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추모제

2023.10.07. 남민전 동지 합동추모제

열사추모 2023. 12. 20. 14:30

지난 10월 7일(토) 오후 12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재문 선생 42주기 및 남민전 동지 합동추모제를 가졌습니다.

추모제에 앞서 추모제에 참석한 동지들은 김병권, 신향식, 박석률, 김충희, 김희상, 이해경 동지 묘소에 들러 참배를 진행하였습니다.

- 이재문 동지의 삶과 죽음 -
동지는 청년시절,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4월혁명 공간 속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혁신운동, 통일운동을 하였다. 
1961년 2월 ‘민족일보’가 창간되자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나, 5·16쿠데타로 ‘민족일보’는 폐간되었다. 이후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박정희 유신쿠데타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대구경북지부의 운영위원과 대변인을 역임하며 민족민주운동에 헌신하였다. 
유신 이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피신생활을 하면서, 1976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기로서 4년 가까운 기간을 민족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투쟁하였다. 1979년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항쟁이 부산과 마산 등에서 솟구쳤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와중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 중 5·18 광주항쟁 소식을 접하고, 학살에 대한 항의단식을 하였으며, 고문과 단식 후유증으로 발병하였으나, 전두환 정권이 치료를 불허하여, 1981년 옥중에서 운명하였다.

- 김병권 동지 -
권재혁, 이일재 동지 등과 함께 민족민주운동에 매진,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징역 5년, 이재문, 신향식 동지들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출옥 후 범민련 등 통일운동에 전념

- 신향식 동지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징역 3년 6월, 1976년 2월 이재문, 김병권 동지들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
1980년 12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아, 1982년 10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형 집행

- 박석률 동지 -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10년간 수감생활
1995년 범민족대회와 관련해 세번째 투옥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통일연대・한국진보연대・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통일과 사회변혁 운동에 힘을 쏟았다.

- 김충희 동지 -
성균관대 여학생 운동 그룹 조직 활동 지도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수감
김희상 동지와 함께 민청련 활동, 1985년 남편 김희상 구속 후 민가협 활동

- 김희상 동지 -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구속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대변인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구속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서울시본부 사무처장

- 이해경 동지 -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서울대 향토개척연합회와 향토개척단 활동
1965년 전남 광양 옥룡 백운산 산악개척협업농장 활동
1968년 7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석방
1976년 3월 남민전 중앙위원 활동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